야설

여승무원, 연인, 여자 - 37부

야동친구 1,332 2018.05.21 18:18
“어느 날, 내 가슴 속으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어왔다.
조그마한 날갯짓은 그저 간지러울것만 같았는데,
우습게 봤던 그 작은 움직임에,
아파하고 또 아파하고 그렇게 힘들었다.
그래도 간지러워 웃는 짧은 순간이 행복해.
바보처럼 나비를 내 가슴 속에서 살도록 허락해버린 나라니.
여전히 키우고 있다.
그렇게 자라고 있다.”
기내 안.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LA로 점점 다가서고 있었다.
귀여운 얼굴을 한 앳된 꼬마승객이 팀의 막내인 김희진 승무원에게 뭐라고 하고 있다.
“아줌마, 콜라 한잔만 더 갖다주세요.”
“아…아줌마…!! ㅜㅜ”
희진의 표정이 황당함에 순간적으로 일그러질 듯 말 듯 한다.
그러나 이내 밝은 웃음을 얼굴에 가득 띄고 명랑하게 대답한다.
“호호호~네, 어린이. 누나!!!가 콜라 갖다 줄께요.”
희진이 갤리 쪽으로 사라져간다.
“후훗!!”
혜미가 웃음을 얼굴에 머금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누구나 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후훗”
혜미도 그런 기억이 있다.
어린이 승객들은 무섭다.
특히 어린이 단체승객들의 힘은 무시무시해서 가공할만한 위력을 종종 보이곤 한다.
승무원들의 요구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대고 자리를 옮기기 일쑤다.
안전벨트 하나하나 승무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매어주고 풀어줘야 한다.
기내식을 얹는 선반도 일일이 풀어주고 넣어주고 해야 한다.
바쁘게 돌아다니며 어린이 단체승객들을 챙기려면 금방 진이 빠지기 일쑤다.
게다가 예사로 꽃 같은 승무원들에게 아줌마아줌마 해댄다.
갤리까지 쳐들어와서는 음료수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질러댄다.
혜미도 신입시절 어린이 단체승객들을 맞아서 곤욕을 치뤘다.
어린이 승객들을 챙겨주느라 제 때 착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몸이 뒤로 떠밀려가
화장실에 쿵 부딪히고 쓰러진 적도 있었다.
지금 희진 씨가 겪고있는 장면을 목격하니 자신도 모르게 그 때의 일이 떠오르는 것이다.
재성은 걸핏하면 혜미에게 비행 시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려달라고 졸라댔다.
사실 일을 마치고 지상으로 돌아오면 그런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혜미는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성은 그런 에피소드들을 들려달라고 조른다.
그런거 알아뒀다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여승무원들 꼬실 때 써먹는 것은 아닐까??
혜미는 그런 의심을 품으면서도(??) 재성이 졸라대면 가끔씩 자신이 비행을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가끔씩 들려주곤 했었다.
비오는 날 터뷸런스가 일어나 몸이 부웅 떠서는 기내 안 복도 저만치까지 밀려갔었던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재성은 헉~!하고 놀라는 눈치였다.
신입 때 워낙 정신없이 이리저리 치이다보니 피곤해서 승객 앞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머리를 쿵!하고 소리내며 벽에 부딪혔던 창피한 일,
그리고 그 순간 깨어나보니 동료들이 이미 음료서비스 준비에 들어가 있어서 허둥지둥 갤리로 뛰어갔던 일,
당황함이 당황함을 부른다고 앞치마 어디 놔뒀는지 몰라서 허둥지둥댔던 일을 들려줬을 때
재성은 배꼽을 잡고 뒹굴면서 혜미의 머리를 귀엽다는 듯이 톡톡 쥐어박으며,
"푼수~!"라고 놀려댔다.
혜미가 들려준 에피소드 중에서 압권은 자이툰 부대원들의 귀국 때 벌어진 일이다.
이라크와 인접해 있는 중동의 모 국가 비행장에서 자이툰 부대원들이
혜미가 근무하는 항공사의 민항기를 이용해서 귀국하게 되었다.
그날 비행기 전체가 군인들로 가득찼다.
자이툰 부대원들의 모습은 늠름하기도 했고,
부대원들 중 병사들은 대부분 혜미의 동생뻘인지라, 대견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기장님이 부대 지휘관들을 기장실로 초청하셨고, 거기서 함께 차를 나누시며 담소도 하셨다.
스피커를 통하여 장병들의 그 동안의 노고를 칭찬하는 말씀을 유머러스하게 방송하시자,
한창 혈기왕성한 부대원들의 웃고 떠들고 환호하는 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군인들답게 제자리에 모두 착석하여 일제히 일사불란하게 큰 목소리로 군가를 제창하는
활기찬 모습들이 혜미와 동료 여승무원들에게 무척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떤 군인들은 아리따운 여승무원들의 모습을 넋을 잃고 주시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군인들은 자신의 옆으로 지나다리는 여승무원들의 다리를 계속 집중해서
힐끔힐끔 훔쳐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어떤 것보다도 질서가 다소 문제가 되었다.
여승무원들은 각자 자기가 담당하는 존에서 스카이패스 신청서를 나눠주랴,
무엇을 나누어줬다 다시 걷워들이는 등 정신이 없을 터였다.
군인들은 이제 위험한 지역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 때문에 들떠 있었다.
서로 각자 떠들어대고 자리를 옮기기도 하고 한마디로 정신사나운 광경으로 제대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혜미는 신청서를 나누어주기 전에 잠시 각자 떠들어대고 옆자리로 몸을 옮기는 군인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흠…일일이 앉히고 부탁하고 나눠주고…애 좀 먹겠는걸…”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이 담당하는 존의 맨 앞자리에 앉은 젊은 병사에게 웃으면서 살며시 물어보았다.
“죄송한데요….”
“네? 앗! 네네…”
아리따운 혜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건네자 병사가 순간 바짝 긴장했다.
“저기…이쪽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 누구신지…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아! 네, 네…김 병장님!! 김 태운 병장님!!!”
저쪽에서 김태운 병장이라는 군인이 한창 떠들다가 고개를 돌린다.
“뭐야?!!”
병사가 얼른 김태운 병장 쪽으로 달려가서 뭐라고 한다.
“저기, 스튜어디스 분이 김 병장님을 찾으셔서 말입니다.”
“으응?? 뭐뭐??”
그 김태운 병장이라는 군인이 황급히 혜미의 곁으로 재빠르게 다가왔다.
“흐흠…!! 네! 무슨 일이십니까?”
김 병장은 예쁜 스튜어디스가 자기를 찾아주었다는 말에 싱글벙글 웃음꽃이 가득이다.
흡사 간이라도 빼줄 적극적인 자세였다.
혜미가 얼굴에 한껏 예쁜 웃음을 지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아, 네. 김병장님, 죄송하지만 우리 존에 앉아계신 승객분들에게 스카이패스 신청서를 나눠드려야 하는데요…
저 혼자서는 조금 벅찰 것 같아서…
김 병장님께서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시죠?^^”
“네?? 아아, 물론입니다. 그까짓 것쯤이야…에헴~!”
김병장이 얼른 고개를 뒤로 돌려 존의 병사들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전체 차렷!!!”
김 병장의 우렁찬 함성 한마디에 순식간에 존 내의 병사들이 일제히 앉은 자리에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소리도 내지 않는다.
“맨 앞자리부터 뒤로 번호!!!
흠흠!!! 지금부터 여기 계신 승무원 분께서 무슨 신청서를 내주실 거다.
다들 뒤로 돌렷!!!
다 작성하고 나서 뒤에서부터 앞으로 넘겨라, 알았어??”
“네엡~!!!!”
그때부터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혜미는 필요하다 싶을 때마다 김 태운 병장을 철저히 이용해먹었다.
아주 간단했다.
예쁜 웃음과 부드러운 목소리의 상냥한 부탁과 귀여운 표정이면 다 이루어졌다.
다른 동료들은 일일이 병사들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무쟈게 고생하고 있었다.
혜미가 잠시 후에 웃음 띈 얼굴로 곁에 다가온 선배에게 의기양양해서 자랑했다.
“언니, 나 이러이러한 일들…김 병장님께서 잘 도와주셔서 아주 쉽게 처리했다.”
저 뒤에 앉아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김 병장을 손짓으로 상냥하게 가리키면서
선배에게 웃음 띈 얼굴로 자랑하자, 김병장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선배도 머리를 잘썼다며 혜미에게 웃으며 칭찬해주었다.
이 에피소드를 들려줬을 때 재성도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면서 무척 재미있어 했다.
정말 그래…
비행기를 타면서 일을 하다보면 좁은 기내에서도 온갖 희로애락이 뒤섞인 일들을 접하곤 한다…
어느 직업이든 마찬가지지만…
이 일은 끝이 없구나….
…..라고 혜미는 생각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보니…
백명의 승객이 있으면 백가지의 서비스가,
천명의 승객을 대하면 천가지의 서비스가 있게 된다.
단순해 보이는 일이지만 일은 일로서 하는 것이다.
그 일의 내용은 하나하나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모두 다르다.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교육받은 대로만 모든 상황이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깨우치고 열심히 해나가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했던 적지않은 승객 중에서 우연히도 기내에서 재성을 만났다.
그리고 재성과....
사랑하는 연인이 되었고....
재성의 모습을 떠올리자 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한번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런데…
그런데…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다.
아까부터 저쪽 좌석에 앉아계신 말쑥한 차림의 남자승객 한 분이
시도 때도 없이 혜미쪽을 훔쳐보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계시다.
다시 저쪽을 지나쳐 가야 하는데….
“저기요…승무원.”
아, 그 남자승객 분이다!
“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네…저 커피 한잔만 갖다주실 수 있어요?”
“아, 그러시겠어요?”
혜미가 웃으면서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갤리로 가서는 커피를 가져다 손님에게 갖다 드렸다.
“맛있게 드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정말 친절하시네요.”
“아닙니다.”
혜미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 손님이 또 물어온다.
“저기…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어머, 왜 그러시죠? 저 나이 많은데…”
혜미가 웃음지으며 쑥스럽다는듯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니오…너무 친절하게 서비스를 잘해주셔서…
괜찮으시다면 현지에 도착해서 제가 저녁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요.”
아하~!!!
혜미는 단숨에 상황을 알아차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이를 어쩌죠.
제가 며칠 전에 약혼식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기꺼이 손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같이 했을텐데요…
정말 친절하신 마음만이라도 감사히 담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십시오.”
겸연쩍어 하는 승객을 뒤로 하고 혜미는 웃음지으며 갤리로 돌아왔다.
혜미의 손가락에는 그럴듯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가끔씩 이런 짖궂은 손님들이나...
일부의...일부 기장을 상대하면서 승무원들의 대부분은 흔히들 가짜반지를 준비해서 손가락에 끼곤한다.
특히 경험많은 고참 승무원들은 처음 기내로 손님들을 맞이할 때부터
벌써 남자승객들의 얼굴표정이나 눈빛을 보고 요주의 인물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슬쩍 갤리에서 후배승무원들에게 어느 좌석의 손님을 주의하라며 미리 당부하거나 일러주곤 한다.
혜미가 갤리에 들어가서 조금 전에 있었던 남자승객의 저녁식사 요청을
동료승무원들에게 지나가는 이야기로 웃으며 들려주었다.
“어머, 그 손님 나한테도 그랬었는데…”
“어머, 저두요. 저한테도 커피 주문하면서 그러셨어요..!”
알고보니 이미 혜미 앞에도 세 사람한테 똑같은 뻐꾸기를 날렸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여승무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후후훗~!!!”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을 접한 여승무원들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갤리안에 가득 울려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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