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여승무원, 연인, 여자 - 41부

야동친구 1,828 2018.05.31 13:25
"후우~!"
혜미가 또 가느다랗게 한숨을 쉰다.
호흡이 약간 떨려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긴장이 되나보다, 훗!
나는 오른 손을 내밀어 혜미의 왼손을 살짝 잡아주었다.
혜미가 나를 바라본다.
나는 빙긋이 장난스런 미소를 지어보이며 살짝 위안을 주었다.
“긴장하지마, 못생긴 며느리라도 결국은 시부모님을 만나봐야 하는 법이니까.”
“핏!”
혜미도 약간 안심이 되는 듯 살짝 웃음을 흘린다.
혜미의 눈가에도 장난기가 피어오른다.
“그냥 가볍게 인사드리고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되는거야.
긴장할 필요도 없어, 평상시의 네 행동대로라면 틀림없이 좋아하실거야.”
“그래도 여자한테는 안그래요, 남자들은 몰라요, 얼마나 겁나고 떨린다구여.”
“오빠가 곁에 있잖아, 뭐가 떨리고 겁이 나? 누가 잡아먹는대? 쿡쿡...!”
“그래도 행동하는 사람은 저라구여, 오빠가 곁에 있다구 해서 뭐...”
“적어도 위안은 되잖아, 내가 곁에서 에스코트 잘해줄께.”
“방해만 안해도 좋겠다.”
“하하하~!!! 그래도 장난칠만큼 여유 있는 걸 보니 안심이 되네.”
잠시 후, 차에서 내려 혜미의 어깨랑 등을 토닥토닥 거려 주었다.
“아가씨, 보기 좋은데? 올라가실까요?”
“넵!”
혜미가 힘차게 그리고 당돌하게 한마디를 내뱉는다.
어? 꽤 씩씩한 모습이네? 쿡쿡쿡!
혜미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다.
부모님은 틀림없이 혜미를 좋아하실거다.
혜미는 아름답고, 요즘의 젊은 퀸카답지 않은 성숙함과 예절까지 갖추고 있으니까.
한마디로 싫어하실 이유가 없으실거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대수로울 것이 무엇인가.
어차피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아닌가.
그렇다, 나는 혜미를 사랑한다.
혜미 덕분에 나는 잃어버렸던 내 영혼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혜미의 곁에서, 혜미와 함께 있음으로써 순수한 마음을 되찾았고,
이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과 행복을 느낀다.
늘 곁에 있어도 마음이 두근거리고 설레인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혜미야, 긴장하지 마, 떨지도 마.
널 사랑하는 오빠가 늘 곁에 함께 있을 테니.
널 아낄께.
널 지킬께.
널 행복하게 해줄께.
사랑해, 조 혜미.
“아, 어서 와요. 오시느라 수고 많았어요.”
어머니께서 밝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땡큐, 어머니.
“안녕하세요! 조 혜미라고 합니다.”
혜미가 승무원 특유의 편안하고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허리를 굽히며 어머니에게 깎듯이 예의를 갖춘다.
승무원 특유의 인사법이었다.
무척 보기 좋은걸? 이건 정말 강력한 무기야, 훗!
“어머니, 예쁘다고 칭찬 좀 해주세요. 하하!”
내가 곁에서 한마디 거들자, 어머니께서도 덩달아 웃음을 지어보이신다.
“그래, 네가 자랑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직접 보니 듣던 것보다 더 예쁜 아가씨네.”
어머니께서도 마음에 들어하시는 눈치다.
바르고 정중한 예절은 역시 아무리 보여줘도 싫어할 사람이 없는 법이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어머니가 다시한번 권하신다.
“네, 고맙습니다.”
혜미가 처음 와보는 우리 집의 낯선 분위기와 환경이 약간 신기하고 흥미롭다는 듯
살며시 이리저리 눈어림으로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면서도 혹시 실수할까봐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나는 혜미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다시한번 살며시 혜미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거실에 앉아계신 모습을 먼저 발견한 내가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께서 우리 쪽으로 웃음을 지으면서 돌아보신다.
“그래, 왔니?”
천천히 몸을 일으키시면서 이쪽으로 살짝 다가오신다.
“그냥 앉아계세요. 몸도 아직 불편하시잖아요.”
아버님은 건강이 조금 안좋으시다.
“하하, 그래도 그럴수야 있나!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안녕하세요, 조 혜미라고 합니다. 평소에 오빠한테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혜미가 어머니에게 했듯이 정중하고 예의 바른 자세로 아버지에게도 인사를 올린다.
그리고 허리를 바로 펴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살짝 바라본다.
순간 아버지께서 흠칫 하고 놀라시는 모습이시다.
하하, 역시...아버지께서도 젊은 애들이 예쁘다고 느껴지시는가 봐요? 큭큭큭...!!!
“어서 와요. 정말 반갑네. 재성이가 평소에 자랑을 많이 하더군요.
직접 뵈니 역시 우리 재성이가 자랑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아닙니다, 과찬의 말씀이세요.”
“자, 이리로 와서 좀 앉아요.”
“고맙습니다.”
혜미가 다소곳이 대답하며 몸을 움직인다.
내가 혜미의 손을 잡아 끌며 자리에 앉혔다.
혜미가 다소 민망해 하면서 슬그머니 내 손을 뿌리친다. 큭!
“내가 차를 좀 내올께요, 잠시만 기다려요.”
어머니께서 부엌 쪽으로 향하신다.
“같이 하겠습니다.”
혜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머니 쪽으로 다가선다.
“아뇨, 그냥 앉아계세요. 손님한테 이런 걸 시킬 수야 없지.”
“아니에요, 원래 가사 일을 좋아합니다.”
혜미가 어머니를 모시고 부엌쪽으로 향한다.
어머니께서 쑥스러워 하시면서도 싫지는 않으신 듯 혜미와 함께 저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나도 일부러 말리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있어서도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느낌을 많이 지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고, 혜미의 예의 바른 태도에 흡족함을 느꼈다.
아버지께서는 혜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뭔가 상당히 호기심과 관심이 가시는 눈치가 역력하다.
내가 살며시 낮은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아버지, 보시기에 괜찮으세요?”
아버지께서 나를 돌아보신다. 담담한 미소를 지어보이신다.
“그래, 예의 바른 아가씨구나.”
“보시면 보실수록 마음에 드실거에요.”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내가 다소 의기양양하게 말씀을 건넸다.
“그래...”
아버지께서 환하게 웃음을 지어보이셨다.
아버지께서는 무척 융통성이 있으시고 개방적이신 분이시지만,
나름대로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 엄격하신 분이시다.
그 점을 다소 염려하고는 있었지만, 환하게 웃음 지으시는 걸 보니 그런 걱정은 이내 씻은듯이 사라진다.
잠시 후, 어머니와 혜미가 끓여내 온 차를 들면서 네 사람이 둘러 앉았다.
“어휴..보면 볼수록 참한 느낌이 드네!”
어머니가 웃으시며 혜미를 칭찬하시고, 혜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혜미가 고개를 들어 어머니에게 웃음을 살짝 지어보였고, 귀여운 보조개가 피어올랐다.
아버지께서도 차를 들면서 그런 혜미의 표정을 넌지시 살피고 계셨다.
그러다가 문득 혜미에게 말씀을 건네셨다.
“승무원 일을 하면 힘들지 않은가?”
“괜찮습니다, 어떤 직업이든지 나름대로 힘든 점은 모두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제 적성에 맞아서 재미있게 잘하고 있습니다.”
“매우 바람직한 자세로군!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일에 만족을 느끼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네.
아가씨도 그런 바람직한 자세를 갖고 있어서 참 보기가 좋군.”
“아닙니다...”
어머니께서도 옆에서 한마디 끼어드신다.
“사실 나도 해외에는 적지 않게 나가 본 편인데...
솔직히 우리나라 승무원들이 다른 나라 승무원들보다 훨씬 나은 것 같더라구요.”
아버지께서도 수긍하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래, 맞아. 해외출장을 마치고 돌아올 때,
참한 우리나라 승무원들이 정다운 우리말로 반갑게 건네는 인사를 받으면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 같다.
맛있는 비빔밥으로 외국음식만 먹어서 니글니글해진 속도 달랠 수 있고...
사실 싱가폴 항공이 어떠니 하고 말들이 많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승무원들이 인물도 제일 낫고 마음씨도 착하고, 서비스도 정겹다고 생각해.
나름대로 우리나라를 처음 찾는 외국인들이 제일 먼저 대하는 한국인들이니
긍지와 보람을 갖고 일에 임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정말 힘이 되는 말씀들이시네요, 마음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혜미가 다소 큰 위안을 받은 듯 명랑한 목소리로 정중히 대답했다.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잘하고 계세요...계속 그렇게 파이팅~!!!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외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다시 혜미에게 말을 건네신다.
“아버님 함자는 어찌 되시고?”
“조자 성자 태자를 쓰십니다.”
“그래...”
아버지께서 살짝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면서 다시 차를 한모금 드신다.
“아버님은 건강하시고?”
“네, 아버님께서는 무척 건강하십니다.
요즘 들어서는 사업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셔서 그런지 다소 건강이...
큰 무리는 없지만 아무래도 딸의 입장에서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효녀로군. 원래 우리들 연배가 되면 이것저것 이상징후들이 조금씩 나타나게 마련이지.”
아버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다가 다시 혜미에게 질문을 하셨다.
“재성이에게 듣기론 아버님을 모시고 두 분만 계시다고 들었는데...”
“네, 어머니께서는 제가 고등학생 때 사고로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저런!”
어머니께서 딱하다는 듯 살짝 혀를 차시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셨다.
혜미의 표정이 다소 침울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차분함을 되찾으며 말을 이었다.
“제 아버지께서도 그리고 저도...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합니다.
자상하시고 좋은 분이셨어요.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그렇겠지..”
아버지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수긍하신다.
나는 곁에서 그런 대화들을 들으면서 조금 속이 불편해졌다.
괜히 혜미에게 어떤 부담을 안겨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가 괜히 부담 느끼면서 침울해지는 건 싫은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께서 다시 혜미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그래도 이렇게 바르게 잘 자란걸 보니 원래 아가씨의 심지가 곧고 강한 것 같군.
쉽지 않은 일이야, 나도 자식을 기르는 사람으로서 기특하기도 하고...”
“아닙니다...”
그 때 어머니의 핸드폰이 울린다.
어머니께서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시며 저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면서 전화를 받으신다.
둘째 누님의 전화인 듯 했다.
아버지께서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혜미에게 말씀을 건넨다.
“자꾸 아픈 곳을 건드려서 미안하지만...어머님의 함자는 어떻게 되시나?”
“괜찮습니다. 어머니 이름은 임옥임이십니다.”
“임옥임?”
아버지의 표정이 순간 이상하게 변하신다.
왜 저러시나...
내가 한마디 끼어들었다.
“혜미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어요, 사진으로 뵈었거든요.”
아버지께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혜미의 얼굴을 바라보신다.
“어머니 고향이 어디신가?”
“구미 선산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어머니 형제분은?”
“......어머니께서는 고아셨어요.”
“......................”
아아...! 이건 아닌데...
아버지...그만 하세요.
혜미가 부담스러워 하잖아요....ㅜㅜ
아무래도 한마디 끼어들면서 다소 어색해진 분위기를 만회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
어머니께서 통화를 끝내시고 자리로 돌아오신다.
“다들 시장할텐데 식사하셔야죠. 천천히 이야기도 나누면서.”
“오늘 밖으로 나가서 식사합시다. 내가 잘 가는 곳으로 가서 대접하고 싶군.”
아버님께서 찻잔을 내려놓으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 그러시겠어요? 제가 모실께요, 아버지!”
내가 얼른 말씀을 건네면서 혜미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어색한 분위기를 잘 끝내주신 것 같다, 땡큐 어머니!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자꾸나! 우리도 준비합시다.”
아버지께서 몸을 일으키시면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돌아가는 차 속에서 혜미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냥 평소처럼 턱을 괴고는 차 창 밖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은근히 마음이 불안해졌다.
“에헴!!”
내 과장된 헛기침 소리에 혜미가 약간 놀라면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내가 혜미를 보면서 씨익~! 썩소를 날렸다.
혜미가 그런 내 표정을 바라보면서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나는 다시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윙크를 날렸다.
혜미가 입술을 살짝 벌리면서 웃는다.
가지런하고 고운 치아가 드러난다.
“왜 그래? 아까부터 왜 말이 없어? 걱정 돼? 근심 돼? 떨려? 다 끝난거 어쩌겠어? 하지만 밥은 맛있었잖아?”
내가 속사포처럼 명랑하게 말을 건네며 혜미를 안심시켰다.
“응, 밥 맛있었죠...그냥...오빠 부모님들 참 좋으시더라...”
“응, 아닌게 아니라, 아들이라서 그런게 아니라...우리 부모님들 좋으시지.”
그래...우리 부모님들은 자상하고 좋으신 분들이야...
그 점은 내가 당연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혜미야.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존경스러운 분들이야.
“부러웠어요...따뜻한 가정의 분위기...”
“응?”
“아니 그냥...”
혜미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차 창 밖을 바라본다.
내가 오른 손을 뻗어 살며시 혜미의 왼손을 어루만져 주었다.
어떤 느낌이 와 닿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생각나니 혜미야?”
그럴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혜미는...그런 가정을 잃어버린지 오래일 테니까...
마음 속에 어떤...아쉬움과 그리움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을 테니까...
사실은...오빠도 그 심정 잘 알아.
나름대로 오빠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혜미야, 그런 걱정 하지마.
근심을 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근심에 빠져들고,
우울에 빠지면 빠질수록 더 헤어나기 어려운게 사람의 마음이잖아.
앞으로 우리 둘이 새로운 우리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면 되잖아.
우리도 우리의 가정을 꾸리고...앞으로 그렇게...함께 나아가면 되잖아.
오빠가 힘쓸께.
오빠가 잘할께.
우리 행복해지자.
나는 짐짓 유쾌한 기분을 스스로 불러일으키며 휘파람을 불었다.
혜미가 잘 부르는 그 일본노래의 멜로디를 말이다.
혜미가 뜻밖이라고 느꼈는지 눈을 약간 둥그렇게 뜨고 나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씨익~!
나는 다시한번 썩소 한방을 혜미에게 날렸다.
혜미가 환한 표정을 지으면서 소리내어 웃는다.
혜미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업되었다.
나는 유쾌한 기분으로 그렇게 차를 몰아 나갔다.
차는 시원스레 쏜살같이 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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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혜미는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법원 근처에는 유난히도 커피숍이나 술집, 모텔들이 즐비하다.
대한민국에서 집행되는 모든 법률과 판결들이 내려지는 중심지역에 어찌 이런 장소가 이리도 많을까.
법의 뒷 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합의와 조정과 거래들이
이 장소에서 법률의 집행과 마찬가지로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이 아닐까.
둘이 조용히 만나서 따로 식사라도 하고 싶다며, 언제 시간이 가능하겠느냐는
재성 아버님의 연락을 받았을 때 혜미는 몹시 당황스럽고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혹시 그날 인사를 드렸을 때, 마음 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기셨지만
오빠 앞에서는 아무 말씀 안하시고 잠자코 계셨던 것은 아니셨을까...
혹시 오빠와의 교제를 허락하시기가 싫어서 따로 말씀 하시려고 자리를 마련하신 거라면...
아아...
어떡하면 좋아...
오빠는 나의 전부인데...
지금 이순간 나에게 있어서 오빠는...
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떨리고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어쩔 수도 없지 않은가.
결국 시간 약속을 정하고 재성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약속장소로 나온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먼저 약속장소로 나와서 자리에 앉아계신 재성 아버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처음 뵜을 때부터 느껴졌던...
굉장히 자상하고 마음이 끌리는 어떤 낯익은 분위기를 가지신...
혜미가 당황스러움을 느끼며 얼른 가까이 다가서며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네요.”
“아니야, 나도 방금 왔다네. 조금도 부담 갖지 말아요, 어서 자리에 앉게.”
“고맙습니다.”
혜미가 얼른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종업원에게 주문을 한 후, 재성의 아버지, 임성규가 조용히 말씀을 꺼내신다.
“미안하네. 당황하고 무안해 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따로 불렀네.
개인적으로 혜미 씨랑 따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있고 그래서...
나도 나름대로 바쁘다보니 원래는 좀 더 괜찮은 자리를 마련해야 하지만,
이런 곳으로 결국 불러내고 말았군...미안하네.”
“아닙니다, 저는 괜찮아요. 일부러 신경쓰시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혜미가 다시 정중히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한다.
그런 혜미의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던 성규가 말을 건넨다.
“한가지 물어 볼 것이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어머니랑 많이 친했었나?”
“네?”
“아니, 부담은 갖지 말고 그냥 편안히 이야기하게나.
돌아가신 분 이야기 자꾸 들추어내는 것이 안쓰럽긴 하지만, 내가 좀 궁금한 것이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네...어머니는 저를 무척 아끼고 귀여워하셨어요.
어머니가 아니었다면...어머니가 항상 저를 잘 돌봐주셔서 별로 어려움이 없이 자랄 수 있었습니다.”
다소 이상하고 어색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래도 혜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재성의 아버님이 아닌가.
뭔가를 자꾸만 어색하다고 해서 말을 돌리고 숨기는 것보다는
이렇게 솔직하게 대답드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혜미는 생각했다.
“그래...혹시 어머니께서는 재혼을 하신건가?”
“네?”
혜미가 깜짝 놀라면서 성규를 바라보았다.
어...어떻게...
어떻게 알고 계신걸까?
내...내가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어떻게...
호...혹시...뒷조사라도 하신 것은 아닐까...이 분은 판사니까...혹시...
엄마가 날 다른 곳에서 낳아서 데리고 오신 사실을 아신다면...
알고 계신거라면...
틀림없이 오빠랑의 교제를 허락하시지 않으실텐데...
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부터 두려움이 무섭게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끼며
몸이 서서히...바들바들 떨려왔다.
커피 잔을 쥔 손이 가볍게 떨려온다.
그런 혜미의 불안해 하는 모습을 잠시 조용히 바라보던 성규가 다시 말을 건네온다.
“어머니께서는 재혼을 하신건가?”
“아...아닙니다. 어머니께서는 재혼을 하신 것은 아니셨어요...”
성규가 잠자코 혜미를 바라본다.
혜미는 성규의 시선을 느끼면서 마음이 더욱 더 불안해져만 간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뜨거운 열기가 치솟아 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얼굴이 발갛게 변해가고 있을 것이다.
“후우....!”
갑자기 재성의 아버지가 한숨을 나지막하게...그러나 깊이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혜미가 깜짝 놀라며 그런 재성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재성 아버지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침울한 표정 속에서 뭔가 묘한 눈빛으로 혜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고아셨다고?”
“네..."
혜미가 더욱 더 움츠러들면서 대답을 했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아...아무래도...이건 뭔가 잘못된 거라고...불안하다고 혜미는 생각했다.
“누가 그러던가? 어머니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 하신건가?”
“...어머니께서는...제가 어릴 때부터 가족 이야기라든지 그런 것은 전혀 없으셨어요...
아버지께서도 사실은 고아로 자라셨기에...
두 분이 젊은 시절 한창 어려우실 적에 만나셔서는...
그렇게 가정을 꾸리시게 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성규가 잔을 들어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더니 혜미의 얼굴을 다시한번 바라본다.
혜미는 그 몇 초의 시간이 마치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이 어색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좋을지 생각이 전혀 떠오르질 않는다.
“자네 어머니는 고아가 아니셨네.”
“네?”
성규의 느닷 없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말씀에 혜미가 당황하며 온 얼굴에 의아한 빛을 띄웠다.
“자네 어머니는 고아가 아니셨어.”
“무슨 말씀이신지...?”
혜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재성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혜미야...!”
문득 재성의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계셨다.
혜미는 뭔가 너무나 기괴한 느낌이 들어 그런 재성의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는 너무나 친근하고 자상하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혜미야...이상하게 여기진 말아라.
내가 갑자기 말을 놓고 이렇게 부른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것도 전혀 없단다.
널 처음 봤을 때부터...난 널 알아볼 수가 있었단다.
넌...네 얼굴은 네 엄마랑 꼭 닮았구나...정말 너무나도 꼭 닮았다...
어떻게 이토록 기구한 일이...
아아...나도 정말 뭐라고 이 느낌을 정리해야 할 지 모르겠다.
넌...넌...아무 것도 모르고 자란 것만 같구나...
그렇겠지...
네 어머니가 차라리 아무 것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그랬던 거겠지...
그렇게 숨 죽이며 할 말도 못하고 살다 간 것이겠지...
하지만...난 너에게...
내가 알고있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는 수 밖에 현재로선 달리 방법이 없겠구나...”
“죄송합니다...저...전 전혀 모르겠어요...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호...혹시 제 어머니를 알고 계시나요?”
혜미가 더욱 더 불안감을 느끼며...
그렇게 솔직히 재성의 아버지에게 대답을 드렸다.
도대체...
도대체...왜 이러시는 걸까...
도대체...이 묘한 분위기와 느낌은 뭘까...
왜...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걸까...
어떻게...어떻게...엄마에 대해서 알고 계신걸까...?
“지금 너의 아버지는 네 친아버지가 아니시겠지...”
혜미는 순간 뭔가 두려워하던 약점을 꼭 잡힌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임성규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줄 것이 있단다...”
말씀을 하시며 뭔가를 품 속에서 꺼낸다.
혜미의 온 몸의 세포가...
온 정신이 한순간 집중되며 재성 아버지의 손으로 눈길이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