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묻지마-갈 데까지 간 여자 (1)

소라바다 12,119 2018.12.14 10:42
아내와 나는 인문학 전공자다. 같은 학교를 나왔고, 과는 달랐지만 함께 대학원을 다녔다. 비교적 일찍 결혼했는데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둘만의 생활이었다. 우린 잘 맞았고 그걸 증거하듯이 아내는 결혼한 이후 날로 더 예뻐졌다. 둘이서 생활하면서 그간 여러 가지 성적인 일탈도 함께 즐겼다. 그런데 우리가 속한 곳의 상황은 우리 부부 사이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학계 자체가 날로 늙어가는 분위기였고, 늙어버린 집단 속에 젊은 학생들은 나날이 들어와 정체되는 중이었다. 시간강사와 사교육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좀 과하였다 할 성적 일탈도 어쩌면 그 막막함을 가리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결국 나는 학계를 사실상 떠나 사교육 쪽으로 들어갔다. 서른두 살 때부터의 일이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시쳇말로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운이 따라주었다. 학원강사라는 게 참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고 대접받지 못 하는 직종이지만, 늙은이들이 윗자리에 콱콱 박혀 노인네 냄새를 풍기는 속에서 젊은이들이 의미 없이 썩어가는 학계를 생각할 때 사교육 업계는 사람 사는 재미, 아니 그게 위선이라면 최소한 돈 벌고 커리어를 쌓는 재미가 있었다. 사는 맛에 눈을 뜨는 느낌이었다. 답답해진 건 아내 쪽이었다. 나는 커리어가 생기는 대신 바빠졌고 아내는 그 막막한 바닥에 혼자 남았다. 학계란 곳이 삼십대 여성한테 그렇게 자상한 곳도 아니다. 뒤를 봐주는 지도교수도 아내의 몸이나 탐했지 커리어 면에서 끝까지 밀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선영이는 그래도 결혼을 했고 신랑이 있으니까......” 아내가 담담히 전해주는 노교수의 말에 내 속이 끓어올랐다. 그래 그래서 그 늙은이는 결혼도 했고 신랑도 있는 여자의 아랫도리를 고개를 박고 강아지처럼 낑낑댔단 말인가. (그들의 관계는 내가 묵인한 것이었지만 노교수는 그 사실을 모른다) “나 그냥 학교 그만둘까?” 아내가 말했다. “그만두면 뭐하게?” “집에서 놀지 뭐.” 아내가 쓸쓸하게 웃었다. “정 심심하면 이 참에 더 늦기 전에 아이나 낳고, 그냥......” 아이를 낳고, 키우고, 그렇게 세월 속에 늙어가고. 다른 사람들처럼. 서른 둘, 셋이란 나이는 참 애매하다. 이십대 시절 한없이 갈무리해 두었던 꿈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아내는 여전히 어여쁘고, 특히나 부지런하게 관리한 몸매는 처녀 적보다도 한층 탄탄하게 물이 올랐다. 하지만 눈가에 하나씩 달라붙는 잔주름들은 어쩔 수 없다. ‘아직도 대학생 같아요!’ 소리도 이젠 예의치례로 들린다. 지금이 가장 꽃피어있는 나이라면, 남은 것은 내리막길뿐이다. 아내가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똥똥한 아줌마가 되어 가면서, 열심히 벌고 모아 아이들 사교육비를 대는 게 부부사이 유일한 소일거리가 되는 일상을 떠올린다. 거기에 나는 예전에 꿈꾸던 번듯한 학자도 아니고 기껏 학원강사다! 속이 턱 막혀온다. “진명 형한테나 연락해 볼까?” 아내를 향한 미소가 푸근하다기보다는 좀 징그러워 보이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양평에나, 아니면.” “당신 바쁘잖아.” 아내가 말했다. “이제 나 혼자 가는 건 싫어. 좀 무서워. 나도 늙었나 봐.” 겨우 서른 살을 조금 넘긴 나이에 우리는 ‘늙었다’ 소리가 너무 입에 익었다. 우리 부부뿐 아니라 또래 남녀들 누구나가 그렇다. “화났어?” “아니.” 아내가 말했다. “그냥, 좀 재미없어. 인제.” “진명 형하고...... 그거 말야?”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이것저것 다.”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나는 따라 일어나거나 그녀의 어깨를 껴안지 못 한다. 커다란 3파장 조명을 받고서도 아내의 뒷모습은 여전히 서글퍼 보인다. 이 아파트를 처음 얻었을 때만 해도 우린 정말 (가난해도, 전임교수 자리를 못 얻더라도, 함께 있기만 하면, 둘이서 오붓할 수만 있다면)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는데. 이것들이 이상하게 우리에게 더 이상 감흥을 주지 못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관호한테서 전화가 왔다. 꽤 늦은 시각이었다. 우리 부부가 성적 일탈을 하는 데 사실상 최초의 상대가 되어 준 게 관호였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구나!) 당시 관호는 덩치만 크고 고지식해빠진 대학원생이었다. 우리가(정확하게는 내가) 녀석을 택한 건 그 순박함 때문이었다. 그 놈이라면 아내를 주더라도 왠지 불안하단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 그 사이 관호는 장가를 갔고, 그런데도 가끔씩 우리 부부를 찾아 내가 보는 앞에서 아내를 탐하였다. 아내도 처음에는 꺼림칙해 하였다. 하지만 관호는 ‘전 제 와이프 사랑해요. 누나랑 이런다고 와이프한테 소흘히하는 일은 없어요.’ 라 했다. 아내와 얽혀 씨근대면서는 ‘내 여자는 희선이(관호의 아내 이름)에요. 누난 그냥 내 보지에요. 내...... 정액받이! 그냥 그거예요.’ 하기도 했다. 아내는 이상하게 그런 데 크게 자극을 받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하지만 그런 관호도 애가 생긴 후로는 우리 집에 발길을 끊었었다. 2세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라기보다는 건사하기 바빠서였을 것이다. 섹스는 짧고, 일상은 길고 힘들다. 그런데 이 녀석이 너무 간만에 전화를 했다.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그리고는 나한테 한다는 소리가. “형...... 나 누나가 너무 보고 싶어요. 어떡하죠.”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린다. 관호는 그새 순진한 대학원생에서, 배가 나오고 꽉 막혀 보이는 아저씨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녀석을 좋아하는 건 이렇게 타고난 단순함 때문이다. 그는 자기 와이프는 우리한테 제대로 소개도 시켜주지 않는 주제에 아무 거리낌 없이 (그것도 자기 편할 때)찾아와서는 내 아내를 범하였다. 몇 년째 내 아내와 그렇게 몸을 섞어대고서도 그때그때의 즐거움뿐이지 뒤끝이 없었다. 관호는 우리 부부가 관리하는 한 마리 순한 짐승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짐승한테 먹이를 주는 심정으로 아내의 은밀한 부위들을 허락하였었다. “이 녀석아, 그런 이야기는 나 말고 와이프한테 해야지.” “누군데?” 곁에서 아내가 묻는다. 나는 말없이 전화기를 아내에게 건네준다. “어 그래...... 잘 지냈어?” 아내가 살짝 내 눈치를 보면서, 전화기 너머 녀석의 주정을 받아준다. 그러다가 한 손으로 전화기 쪽을 막고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이리로 오겠다는데, 어떡하지?” “오라고 해.” 나는 호기롭게 말한다. 아내가 녀석에게, 허락한다. 전화를 끊고, 잠깐 침묵이 흐른다. 아내는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에 가지 않았고, 나는 사실상 1박 2일로 수업을 한 후 낮에야 집에 돌아와 죽은 듯 자다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참이다. “별일이네.” 아내가 내 시선을 피하면서 중얼댄다. “정말 올까? 정신이 하나도 없네.” “안 올까봐 걱정 돼?” 내가 아내를 놀린다. 아내의 어찌할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어디래?” “광화문 근처인가 봐.” “그럼 한 시간쯤 걸리겠네. 자기도 천천히 씻고 가볍게 화장이나 하지.” “화장은 뭐 하러 하냐?” “예쁘게 보여야지.” 아내의 표정이 멍해진다. 뚱한 듯 보이는 저 모습이 실은 가장 생각이 많고 소심해질 때의 얼굴이라는 걸 나는 안다. 그녀는 잠시 말을 잇지 못 한다. “치.” 그러다 아내가 피식 웃음을 짓는다. 자기만의 생각에 잠긴 후의 웃음일 것이다. “그래봤자 단장했는지 알지도 못 할 텐데. 저렇게 술에 취해서야 뭐.”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욕실로 걸어간다. 그 뒷모습이 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심장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에 얼마만큼의 흥분과, 또 얼마만큼의 질투심이 복잡하게 혼합되었을지 나는 알지 못 한다. 중요한 건 내 피가 급하게 돌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다. 이 모든 부조리는 우리가 살아 숨쉰다는 증거다. 씻고 나온 아내에게서 빛이 난다. 요 근래, 아내가 저토록 아름다워 보인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두근거린 일이 있었던가. 그런데 예상보다 너무 일찍 벨이 울린다. “어머, 어떡하지.” 아내는 아직 머리도 말리지 못 했다. 욕실에서 막 나와 가운 차림이고. “가서 열어줘.” 내가 말한다. “가운은 벗고.” 아내가 놀라 나를 쳐다본다. 우리 눈이 마주친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나는 눈으로만 그녀를 재촉한다. 서로 마주한 눈동자 한가운데서, 둘이 동시에 어떤 불빛을 키우기 시작한다. 벨 소리가 다시, 조심스레 울린다. 아내가 내게서 눈을 피한다. 살짝 고개를 돌린 채 천천히 가운을 벗는다. 꼭 첫날밤으로 돌아간 것 같다. 조심스레 드러난 알몸이 아닌 게 아니라 내게도 완전히 새로워 보인다. 눈이 부시다. “수건도 풀어야지.” “참, 그렇지.” 아내가 픽 웃고는 머리에 둘렀던 수건을 내게 건넨다. 젖은 머리칼이 그녀의 어깨를 덮는다. 나체의 아내가 물기 오른 몸으로 현관에 나선다. 나는 그녀에게서 건네받은 가운과 수건을 챙겨 안방으로 간다. 걸음이 급하다. 빨리 다시 나와, 벌거벗은 채 관호를 맞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싶다. 아내도 보조를 맞추듯 천천히 문을 향한다. 저절로 켜지는 현관 불이 들어오고, 발그레한 조명 아래에서 아내가 문을 연다. 그리고 아내는 그만 그 자리에 굳어 버린다. 관호는 거진 술에 떡이 된 채였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 했다. 그 상태로 우리 집까지 찾아온 게 용하였는데, 알고 보니 도와준 손길이 있었다. 남자 한 명이 관호를 부축하여, 얼결에 이미 현관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는 관호의 후배이고, 좀 멀긴 하지만 어쨌든 내 후배이기도 했으며, 대학원에서는 아내와 같은 과 소속이었다. 찬희란 이름의 그 후배가, 다름 아닌 제 대학원 선배이면서, 또한 학부 선배의 아내인 여자가 완전히 벗은 몸으로 관호를 맞이하는 걸 빤히 쳐다보았다. 찬희, 아내, 그리고 나까지 셋이 그 자리에 석상처럼 얼어붙었다. “어, 누나......” 관호 녀석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아내를 향해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댄다. 거실 테이블에 맥주랑 안주를 늘어놓고, 셋이서 쉴 새 없이 두 병을 비웠을 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술이란 건 참 좋다. 알콜이라도 없었다면 그 어색하던 분위기를 어떻게 무마할 수 있었겠는가. 두 병을 다 비우는 내내 거진 말들이 없었는데, 한 차례 웃음을 터뜨리고 나서도 무언가 설명이나 해명을 꺼낼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냥 웃으며 새 병을 따고 찬희에게 술을 권했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 눈치를 보았지만, 그래도 조금 전에 비해 마음이 많이 풀렸다. 알고 보면 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로 아무 일 아닐 수도 있다. 찬희 역시 그렇게 받아들여 줄런지도.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관호 녀석만 완전히 곤드레가 되어서는 건넌방에 누워 자고 있다. “아 정말 놀랐어요. 아직도 심장이 벌떡벌떡거리네.” 찬희가 술기운을 빌어 너스레를 떤다.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다고요. 저 술 좀 더 주세요.” “야, 나는 어땠겠냐?” 아내도 얼굴이 발그레한 채 입을 삐죽 내민다. 나는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그때그때 벌어지는 돌발 상황들에 가슴이 철렁하고 심장이 벌렁벌렁하는 것 역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 아닌가. “근데 왜 그러셨어요?” “응?” 찬희의 웃음기 덜 가신 목소리에 갑자기 분위기가 식는다. ‘왜 그랬어요?’ 여기에 무어라 답해야 할지 나나 아내나 대답이 궁색하다. 왜 그랬어요? 누나는 왜, 후배인 관호가 밤늦게 찾아오는 걸 홀딱 벗은 채 맞이하죠? 그것도 남편인 형이 옆에서 빤히 보는데 말이에요. 왜 그랬죠? 관호랑 누나는 무슨 관계에요? 관호랑 누나랑, 그리고 형은? 뭐라고 대답해야 하겠는가. 찬희도 갑작스런 분위기 전환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 진짜 몰랐어요. 꿈에도 생각 못 했네.” “......뭘?” 반문하는 아내의 옆얼굴이 파랗게 굳었다. “아니, 누나일 줄 몰랐다고요.” 찬희가 말한다. “모델인 줄 알았다니까요. 세상에.” 잠깐 동안 나머지 침묵, 그리고 아내가 참지 못 하고 픽, 실소를 흘린다. “입 발린 소리도 잘 하네.” “입 발린 소리는요. 진짜라니까요.” 찬희는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돌리려면 이쪽밖에 없다 싶었는지 다시금 열심히 너스레를 떤다. “누가 그 몸을 삼십대라고 하겠어요?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요. 상상도 못 했어요.” “그만 좀 해라. 진짠 줄 알겠다.” “진짜라니까요. 형 그쵸?” “선영이가 몸이 좀 좋긴 하지.” 내가 웃는다. 남자들끼리의 공감. 아내는 어느새 우리의 술안주가 된다. “그만하라니까. 너 하여간 과에 소문냈다간 죽을 줄 알아.” 이 부분이 핵심이다. 그냥 보내자는 걸, 죽어도 이 상태에서 찬희 얼굴 못 보겠다는 아내를 끌고 나온 것도 ‘괜히 당신 과에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그래? 어색하게 넘기지 말고, 풀어야지!’라는 이유였다. “누나가 말하지 말라면 안 할게요. 그래도 아쉬운데.” “뭐가 이 녀석아?” “진짜 멋졌어요. 그런 건 좀 자랑해도 돼요. 누나 앞으로 몸에 달라붙는 옷만 입고 다녀요. 애들이 다 질질 쌀 거예요. 아니 다 벗고 다녀도 돼요! 누나 정도라면 그것도 용납이 된다니까.” “내가 그러라고 하는데도 그렇게 말을 안 듣는다니까.” “누나한테 다 벗고 다니라 한다고요?” 웃음을 터뜨리며 남자들끼리 건배. 아내는 짐짓 토라진 척을 하고. “어디가 제일 예쁘던?” 내가 묻는다. 아내가 나를 흘기지만 개의치 않는다. “뭐가요?” 녀석이 히죽대며 시치미를 떼다가. “선영이 누나의 제일 예쁜 부위요? 그거야 당연히, 얼굴이죠.” “뭐야, 그건 아까랑 이야기가 다르잖아. 깜짝 놀라서 기절할 뻔했대메. 근데 맨날 보는 얼굴 때문에 그랬다는 거야?” 함께 낄낄댄다. 아내도 ‘못 말린다!’ 표정이면서도 조금씩 입가가 흐트러진다. “사실 제일 놀란 게, 피부요. 나 누나 피부가 그렇게 뽀샤시할 줄 정말 몰랐어요.” “뭐냐. 나 피부 원래 좋잖아.” “저야 얼굴만 보니까 몰랐죠. 얼굴이야 원래 화장빨이란 게 있잖아요.” 빈 술병이 점점 더 많아진다. “또 어디가 예쁘던?” “어 전체적으로 뽀샤시해서 대단했지만요. 특히...... 가슴이요.” 아내의 얼굴이 귀밑까지 벌개졌다. “가슴이 구체적으로 어땠는데?” 아내가 내 어깨를 후려갈긴다. “가슴도 가슴이고, 배가...... 진짜 쏙 들어갔데요. 놀랐어요. 누나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나 봐요.” “그냥 헬스는 열심히 나가.” “배...... 그리고 그 아래는?” 내가 묻는다. 찬희가 잠깐 내 눈치를 보았다가, 따라 웃는다.  “저는 보여주면서 하는 게 좋아요.” 찬희가 말한다. 우리의 얼굴이 다함께 발그레해진 건 취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에 연애할 때도 일부러 모텔이나 비디오방 문을 열어놨어요. 누가 들여다볼지 모른다는 게 이상하게 흥분이 되더라고요. 누굴 사랑하게 되면, 괜히 남한테 자랑하고 싶어지나 봐요.” “응 그거 이해가 된다.” 내가 불쑥 말한다. 말해놓고 나니 왠지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어색해지고 나서야 속으로 ‘아차!’ 한다. 우리는 일상과 일탈 사이 경계에 지금 아슬아슬 걸쳐 있다. “소문에, 찬희가 그렇게 바람둥이라 그러던데.” “에이 다 헛소문이에요.” 찬희는 일단 이렇게 발뺌하지만. “그냥 즐기는 게 좋아요. 남자니까요. 끈적끈적 얽히는 건 싫고, 맘 편하고 뒤끝 없게 즐기고 싶어요. 남한테 피해 안 주면 되는 거잖아요.” 이번엔 내 속이 약간 울렁거린다. 찬희의 말은 분명히 노골적인 의도를 담고 있다. 나는 (유부녀한테)치적치적 들러붙는 인간이 아니야, 쿨한 남자야! 그러니까 관호한테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그랬듯이, 나한테도...... “보여주는 게 취향이면 나랑 맞겠네.” 내가 말한다. “나는 보는 게 취향인데.” “에이 남자는 됐거든요.” 그러더니 아내를 향해 은근히 묻는다. “누나는 어떤 게 좋아요?” 아내가 나를 흘끗 쳐다본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다. “난......” 아내가 침을 꿀꺽 삼킨다. “뒤끝 없는 욕구를 받아주는 게 좋아. 외로워하는 사람을...... 마음은 말고 몸으로 위로해주는 게 좋아. 사랑을 나누는 건 지금도 하고 있으니까, 그냥 주고 싶어. 그냥 대 준다고 생각하면 흥분돼.” 찬희가 할말을 잃는다. 나까지도 반쯤 벌어진 입이 다물리지 않는다. “올 때 말야, 관호가 뭐라고 하지 않던?” 아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내가 찬희에게 묻는다. 처음부터 그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다. “다 주정인데요 뭘.” “뭔가 말하긴 했구나?” “그냥...... 좀 자랑하고 싶어하더라고요.” “뭘?” “그냥...... 좋은 게 있다고.” 찬희가 미안한지 눈을 내리깐다. “괜찮아. 말해 봐.” “자기 전용 정액받이가 있다고 했어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찬희가 당황해서 허둥댄다. “신경 쓰지 마세요. 걔가 너무 취해서, 정신없이 한 소리였어요. 누구라고 지칭해서 말하지도 않았고요.” “찬희야.” 내가 입을 연다. “오해하면 안 된다. 선영이는 관호 전용 정액받이가 아니야.” “물론이죠!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관호만 할 수 있는 게 아냐. 누구든 선영이한테 쌀 수 있어. 선영이가 원하기만 한다면.” 찬희가 입을 떡 벌린다. 현관에서 벌거벗은 아내가 관호와 찬희를 맞이했을 때, 아내는 놀라 소리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그랬다면 덩달아 놀랐을 찬희가 반사적으로 문을 닫았을 테고, 일은 어떻게든 사소한 해프닝으로 무마할 수 있었으리라. 아내는 소리치거나 도망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제 몸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찬희도 도망칠 수 없었다. 불빛 아래 하얗게 드러난 아내의 벗은 몸이 꿈속 풍경 같았을 것이다. 찬희도 아내도 서로의 눈을 바라본 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뭔가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멍하니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관호가 현관에서 비칠비칠 쓰러져 버릴 것 같았단다. 그래서 관호의 몸을 부축해주었다. 부축해서 신발을 벗기고 안으로 들였다. 그러니까 걸친 것이 없이 태(胎)에서 나온 양 촉촉한 몸 그대로. 찬희가 아내를 도와주었다. 그들이 힘을 모아 관호를 쇼파에 앉혔는데, 아내는 벌거벗은 그대로였고 찬희는 자켓까지 걸친 차림이었다. 그런 다음에야 아내는 안방으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화들짝 달려서 들어가기는커녕 찬희에게서 몸조차 돌리지 않은 채 뒷걸음질을 쳤다. 나중에 듣자니 거기 찬희 앞에서 뒤로 돌기가 창피해서, 이상하게도 앞모습을 훤히 노출시킨 것보다 벗은 뒷모습을 보이는 게 더 부끄러워서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는 거였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거실의 조명은 반쯤 어두워져 있었다. 그 안에서 찬희가 벌떡 일어나 아내를 맞이하였다. 그는 조금 전 내 권유에 따라서 걸친 것을 모두 벗어던진 상태다. 아내는 잠시 멀뚱히 서 있었다. 찬희가 나체라는 걸 깨닫는 데 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찬희의 벗은 몸은 겉에서 보이는 마른 외양과 달리 제법 근육이 실속 있게 잡혔다. “어...... 왜 그러고 있어?” 아내는 역시 소리치거나 얼굴을 가린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멍하게 그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내의 저 무심한 척 사실은 겁을 먹은, 투명한 눈동자를 나는 정말 사랑한다. “아깐 미안했어요, 누나. 많이 놀랐죠?” 아까보다 지금이 더 놀라는 중 아닐까. 게다가 순수한 척 사심 없는 목소리와 달리 찬희의 노출된 성기는 발딱 고개를 치켜든 상태다. (보여주는 걸 좋아한다더니......) “오늘 일요, 누나가 불편하면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무덤까지 끌고 갈게요. 염려하지 마세요. 난 누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요, 사실 아까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 놀랐고, 좋았어요. 늘상 학교에서 보는 누나 몸이 그렇게까지 아름다웠는지 전혀 몰랐어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지만, 저 스스로는 평생 잊지 못 할 거예요.” 나중에 듣자니 찬희의 말에 아내는 무척 감동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는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당황이 가시지 않은 나머지 ‘어 그래’ 퉁명스러울 정도로 맥없이 중얼대더니. “근데, 왜 벗었어?” 묻는다. 머쓱할 수 있었을 텐데, 찬희는 웃는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아내는 대답하지 않는다. 내가 나선다. “선영아, 찬희 몸 괜찮지 않니? 복근도 뽈록뽈록하고.” “응, 잠깐만.” 아내가 몸을 돌린다. 벌거벗고 선 찬희도 그들을 부추기는 나도 내버려둔 채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찬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쪽을 쳐다본다. 나 역시 눈을 끔벅대며 안방으로 따라 들어갈까 말까 고민한다. 숨 막히는 시간이 잠시 흐르고, 아내가 다시 안방에서 나온다. 벗은 몸으로. 나체는 아니다. 팬티 한 장을 가볍게 걸쳤다. 그 외에는 처음 현관에서 찬희를 맞이할 때와 마찬가지로 맨몸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젖꼭지를 부릅뜬 유방이 반조명 아래 희뿌옇다. “앉자. 마시던 건 마저 비워야지.” 우리는 아내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옷을 벗은 채 나온 것도, 우리 앞에서 벗지 않고 굳이 안방에 들어가 벗은 것도, 벗되 팬티 한 장은 굳이 남겨둔 것도 역시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고 아내는 나중에 말했다. 한참을 고민한 건 우습게도 어떤 팬티를 입은 채 나올까였단다. 아줌마 팬티는 싫고, 레이스가 하늘하늘한 건 의도가 요상하게 보일 것 같고, 결국 음부를 가리고 나온 건 스포츠브라 세트에 딸린, 탄력 있으면서 배꼽 아래와 허벅지까지가 커버되는 물건이었다. 그걸 입은 아내는 묘하게 소녀 같아 보였다. “근데 찬희도 팬티는 좀 입었으면 좋겠네.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어.” 아내가 무심한 척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