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펌] 변해가는 아내(지혜) #4

소라바다 9,347 2019.03.14 06:02
역시 건물이 허름하니 화장실도 폐가 수준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서 건물 뒤편으로 가니 허름한 문이 하나 나와 있었다. 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미줄도 많이 쳐있고 좌변기 하나가 덩그러니 바닥에 있었다. 조심스럽게 볼일을 마치고 2층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노래방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금 전까지 카운터 옆 소파에 있던 지혜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동대표란 인간도 자취가 없었다.
 
“지혜야?”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카운터를 지나갔다. 그러자 5번방에서 푸다닥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최씨가 튀어나왔다.
 
“아. 아내 분께서 도와준다고 하셔서요. 않 그러셔도 되는디... 헤헤...”
 
아내는 얼굴이 발그레한 상태로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비틀비틀한 채로 잠시 후에 나왔다. 근데, 시선은 이 배불뚝이를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가자. 저희 먼저 갈게요.”
 
아내는 잠깐 그 사람을 톡 쏘아 붙이면서 노려보더니, 휘청휘청 거리면서도 성큼성큼 나가버렸다. 뭔가 의아했지만 배불뚝이한테 먼저 가겠다고 말하고 지혜를 따라 내려갔다. 길을 가면서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동대표는 2층 입구에서 우리를 빤히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런 거야, 무슨 일 있었어?”
 
“아냐, 그냥 좀 피곤해서 빨리 들어가서 자고 싶네.”
 
아내는 집에 가는 도중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그런걸까? 정말 술에 취해서 그런 건지,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가서 아내는 바로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아내와 침대에 누워서 아내를 바라보니 아내의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고, 뜨거웠다.
 
“음,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엄청 불그스름해.”
 
“그러게... 모르겠어. 그냥 기분이 이상하네.”
 
내가 잠에 거의 들 무렵, 아내는 밖에 거실로 잠깐 나간 것 같았다. 잠결이라 확실하지 않지만 중간 중간 계속 거실로 나간 것 같은데, 속이 않 좋아서 잠이 않 오나 보다.
 
평일이 시작되고, 산더미 같은 일에 치여 사는 삶이 시작되었다. 요 근래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말을 해보면, 요즘에는 그 노래방에 가지 않는 것 같았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 거기 가서 수다라도 떨지.”
 
“아냐, 괜찮아. 그냥 집에서 책이나 읽기로 했어. 마음의 양식을 쌓아야지 이 사람아!”
 
아내는 탁자 위에 있던 잡지로 내 머리를 콕 찍었다. 최근에는 아내는 책을 읽거나 낮에 운동을 한다고 했다. 관리사무소 2층에는 헬스장이 있는데, 거기서 주부를 상대로 요가를 가르친다고 하였다. 뭐, 운동을 하면 건강해져서 좋고, 남편도 좋고 일석이조라고 했다가 아내에게 더 맞았다.
 
이번 주말에는 다행이도 잔업이 없어서, 쉴 수가 있었다. 아내는 요즘 부쩍 살이 찐 나를 구박하면서 저녁을 먹고 아파트 단지 뒤쪽에 공원에서 조깅이나 하자고 제안했다. 귀찮지만, 아내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아내와 조깅하는 것 같았다. 공원은 내리막 오르막길도 있어서, 운동하기에는 딱 좋았다. 단지, 요즘 책상에 앉아만 있고, 술자리를 좀 자주 다니다 보니, 체력이 영 예전만 못했다. 아내는 매일 운동을 해서 그런지, 잘만 다녔지만... 이거 남자로서 체면이 서질 않는다.
 
“새댁, 요즘에는 왜 않와. 최씨랑만 있기도 심심해 죽것는데.”
 
한 참 몇 바퀴 돌다보니, 마침 조깅하던 노래방 아주머니를 여기서 만났다. 노래방은 주말에 피크타임이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어서 여기서 계셔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그때 방문했을 때의 노래방의 상태를 보고 아줌마가 여기 있는 것이 이해되었다.
 
“예.. 요즘은 집안일하고 이것저것 하는 일 때문에요....”
 
아내는 애둘러서 변명하였다. 요가나 책만 읽는 거면 시간이 조금 남아도는 것이 맞을 텐데 말이다.
 
“아참! 그건 그렇고, 통장들끼리 모여서 다음 주에 월아산으로 산행가기로 했어. 새댁도 갈꺼지?”
 
“네? 그게....”
 
아내는 대답을 끌었다. 별로 고민할 것은 아닌 것이라 생각되는데,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 거들었다.
 
“다녀와, 하루정도는 당신이 없어도 굶어 죽진 않아.”
 
“아니, 토요일 낮쯤에 출발해서, 그쪽에 숙소잡고 있다가 다음날 아침에 등산하고 그날 돌아오려는데, 괜찮지요? 남편은?”
 
이틀에 걸쳐 가는 것 같았다. 주말 동안 혼자 지내야 될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런 것은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아내가 사람들하고 등산도 한 번씩 다녀오면 좋은 게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괜찮아요. 한번 다녀와 지혜야. 다음에는 나랑 같이 등산이나 가고,”
 
“응... 알았어.”
 
그렇게 노래방 아줌마와 작별을 한 뒤, 아내와 나는 몇 바퀴 더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아줌마를 만난 뒤에도 조깅할 때 별말이 없더니, 집에 돌아와서도 아내는 약간 근심이 있는 표정으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왜 그런거야? 난 신경쓸거 없다니까.”
 
“아냐, 그것 때문에 그런 건 아니야. 일찍 자자.”
 
아내는 짧게 말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흘러서, 통장모임 등산 출발 날이 되었다. 나는 이번 주말에는 쉴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이과장 망할 놈 때문에 또 회사에 불려나가야 했다.
 
“다녀올게, 점심때 출발하지? 잘 다녀오고, 도착하면 연락해줘.”
 
“알았어, 나없다고 밥 굶지 말고 나가서 먹고라도 와”
 
출근길에 아내는 나를 배웅해주면서 살짝 키스를 해주었다. 기분 좋게 일을 하러 갈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집을 나서면서 마음 한 곳에서 이상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이상했다.
 
회사에 도착한 후에, 서류철을 정리하면서, 일을 해내가다가 문득 한시, 두시쯤에 아내가 출발을 한다고 한 것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해보았다.
 
“어, 나야. 출발했어?”
 
“아니, 그 쪽에서 표를 잘못 샀다네, 나는 조금 늦게 출발하게 되었어.”
 
“그래? 그럼 어떡하지. 혼자 가야되는 거야?”
 
“아니, 그 동대표라는 사람이랑...”
 
그 놈의 동대표 놈은 언제나 끼어드는 구나. 뭔가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놈하고 아내하고 단둘이 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영 껄끄러웠다. 일은 아무리 빨라도 밤 8시나 돼서야 끝날 텐데, 내가 대려다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사람 것도 표를 못 산거야? 고속버스 타고 가는 거지? 그럼 타고 숙소에 도착해서 연락해줘.”
 
“알았어. 도착하면 전화할게.”
 
아내랑 그렇게 통화를 끝냈다. 그래도 불안하게 남아있는 정체불명의 느낌은 나를 짜증나게 했다. 갑자기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업무는 다 끝내게 되었다. 밤 10시가 다 넘었다. 정신없이 하다 보니, 아내가 전화를 한다는 것도 깜박했다. 황급히 핸드폰을 살펴보니 통화내역은 전혀 없었다. 약간 불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통화를 해보았지만, 아내는 받지 않았다. 피곤해서 도착하자마자 먼저 골아 떨어져 버린 건지, 일행이랑 같이 있는 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거의 12시가 되도록, 전화통화를 할지 기다려봤지만, 끝내 아내에게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일요일이 되자마자 나는 부리나케 일어나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미안해, 어제는 그냥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어.”
 
아내는 뭔가 힘이 없는 목소리다. 어제 술이라도 먹었는지, 내가 아침에 너무 일찍 전화한 것일까.
 
“아냐. 그건 괜찮아. 그냥 걱정이 되서 해본거야. 등산 잘 하고, 몸 조심 하라구.”
 
아내랑 몇 마디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괜히 걱정한 것일까? 그렇다면 요즘 들어서 회사일 때문에 너무 예민해 진 것이 문제일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간단하게 아내가 미리 해놓고 간 밥솥의 밥을 퍼서 남은 김치찌개를 데워 먹었다.
 
“나 왔어.”
 
아내는 저녁 쯤 돼서 도착했다. 등산이 힘이 들었는지, 아직도 기운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내는 짐을 풀어 놓고, 안방으로 바로 들어갔다. 보통은 거실에 있는 더 큰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더니 오늘은 안방에서 샤워를 하였다.
 
아내는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부엌에 들어가 찬 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내 옆에 앉았다.
 
“나 없는 동안 괜찮았어? 밥은 다 챙겨 먹었지?”
 
“어. 김치찌개 데워 먹었어.”
 
아내는 한동안 그냥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할 말 있는 거야? 말해봐.”
 
“아냐. 그냥 산 올랐던 생각하고, 잡생각 좀 했어. 나 먼저 잘게.”
 
아내는 부엌에 컵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왜 그러는 걸까? 나도 TV를 끄고 안방의 침대에 누웠다. 아내는 말은 없었지만, 한참을 그렇게 뒤척였다.
 
또 다시 지긋지긋한 평일이 시작되었고, 늘 그렇듯이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아파트 내에 있는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계단을 올라서려는 그 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저기 지혜씨 남편분..”
 
뒤를 돌아보니, 동대표, 배불뚝이가 나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울상을 짓는 있는 표정 같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허... 지금 늦은 시간인데... 이런데 다 계시고... 예. 무슨 일이 시죠?”
 
“아. 다름이 아니라. 긴히 말씀 드릴 것이 있는데...”
 
그는 그 나이가 대서도 두 손가락을 베베꼬며 나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었다.
 
“뭐, 긴 얘기 입니까? 그러면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하죠. 지금은 조금 피곤해서요.”
 
나는 그놈의 말동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헤헤... 그러면 좀 더 성가실 수도 있으실 것 같은데... 않 되겠습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뭘 말하고 싶은데 이리 시간을 끄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역시 이놈과 상종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괜찮으시면 다음에 하죠. 평일 날은 제가 다 늦게 끝나서 어려울 것 같고요. 주말... 아 토요일은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헤.. 그럼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겠습니다. 주말에 점심쯤에 관리사무소에서 뵙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헤헤...”
 
그는 뭔가 모아둔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살은 뒤룩뒤룩 쪄서 생긴 것은 두꺼비 같고 뒤뚱뒤뚱 걷는 것이 돼지 같은 놈 주제에.....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놈이었다. 나는 그가 표표히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혀를 차며 바라보다가 계단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