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인의 독백 - 프롤로그

박지숙 내 이름이다. 하지만 36년을 살아온 어느 순간부턴가 내 이름은 없어지고, 누구엄마 누구부인 이렇게 불려지고
있는 나를 느끼는 순간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남편의 바람을 알고 난 다음부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글머리를 잡아보지만 어디서 부터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
"현우야, 오늘 엄마 모임있으니까 저녁에 와서 밥먹어라"
학교를 가는 아들뒷모습에 그렇게 말을했다. 현우는 사춘기여서인지 원래도 말이 없는 편이였지만
요즘들어서 더욱 말수가 줄어들었다. 내 말에 고개만 까딱이고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평상시였으면 한마디쯤 했겠지만 오늘 모임에 때문에 마음이 바빠서인지 그냥 돌아서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미용실을 나와서 약속장소로 나갔다. 약속장소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나는 뜻밖에도 남편의 차를 발견했다.
내가 잘못봤나 하는 생각에 다시 차 번호를 확인해보았지만 분명한 남편의 차였다.
나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도대체 어제 저녁에 부산으로 출장을 간 남편의 차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2번을 더 해보았지만 여전히 신호음만 울릴뿐 받을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호텔로비로 들어가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에 했다. 지금까지 14년을 조금 넘게 살아오면서
한번도 남편을 의심해본적이 없었던 나였기에 지금 내 머리속을 지배하는 의구심에 나 역시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여전히 꺼림칙한 마음은 어쩔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카이라운지로 들어가자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남편생각은 접어두고 친구들과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시간이 가고 있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서 우리는 호텔에서 나왔다. 그때까지도
남편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묘한 자존심이 전화하는것을
가로막았다. 아니 자존심이라기 보다는 남편이 나를 속인걸 확인하는것이 더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여전히 별로 중요하지 않는 얘기들을 무슨 대단한 일인것처럼 떠들어대면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거의 먹었을때쯤 전화가 울렸다. 남편이었다.
"여보세요"
"응, 나야 전화했었네"
"네, 어디세요?"
"응, 아직 부산이야. 일이 조금 늦어지네. 당신은 어디야?"
"친구들 모임이 있어서 나왔어요"
이렇게 대답을 했지만 나는 심한 배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남편이 나를 속인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래 재미있게 놀다가 늦지말고 들어가, 이만 끊을께"
내 대답도 듣지않고 남편의 전화는 끊어졌다. 아무런 생각을 할수가 없었다. 아니 머리가 떵 비어버리는듯한
느낌이었다. 연거푸 몇잔의 술을 들이킨것 같다. 나의 갑작스런 모습에 친구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친구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2차를 가자고 하는 친구들을 뒤로 한채
나는 집으로 향했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도 없었고, 어느정도 정신이 들었을때 나는 침대에 기대어
있는 나를 느낄수가 있었다.
"이런것인가?? 배신을 당한기분이??"
문득 결혼전에 사귀던 남자가 떠올랐다. 정태진......결혼전까지 사귀던 남자였다. 서로 너무너무 사랑했지만
나는 집에서 짝지어준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었다. 아마도 태진씨도 지금의 나처럼 이런 배신감을 느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아파왔다. 내 눈에서는 어느덧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