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내가 "동방불패"를 보는 이유 ... - 2부

야동친구 2,514 2018.04.01 18:34
“망각은 죄입니다. 잊혀진 사람에게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 되지요.”
어떤 만화에서 나왔던 대사로 기억한다.
망각은 깊은 죄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의 희미한 존재감과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마저 무의미하게 지워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언제까지 그녀를 기억하는 것은 그녀를 의미있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그것은 그녀가 바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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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사 사무실 빌딩은 12시면 정문을 잠갔다.
하지만 아마 내가 자리에서 일어선 시간은 새벽 두어시는 되었었던 것 같다.
잘은 기억 안나지만 아마 그랬을 것 같다.
우리가 채팅에서 만나면 헤어지는 시간은 언제나 그 때쯤이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친구등록 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꽤나 나중의 이야기지만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그때 니가 친구등록하는 것만 가르쳐주지 않았어두...”
레드머신 : 아셨져? 그렇게 하면 다음번에 접속해두 절 찾을 수 있어여 ^^
심연의산호 : 네, 고마워요
그녀는 그 날 끝까지 존대말을 썼다. 다음번에 보면 그 때 말을 놓겠다고 하면서..
레드머신 : 그럼 안녕히 주무시구여, 다음에 또 뵈여 ^^
심연의산호 : 네......
그녀는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았다. 꽤 미련이 남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난 좀 피곤하기도 했고, 아직까지 그녀에게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녀의 외로움와 아직 채팅하는 사람들 특유의 느낌이 묻어나지 않는 분위기가 새롭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채팅에서 간혹 있었던 일일 뿐이다.
그녀의 외로움이 무너지기 쉬운 위태로운 모습으로 보였고, 남편이 해외출장 가있다는 말에 혹할만한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다시 채팅으로 번개를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고, 그녀는 분당에 나는 대전에 있었다.
대전 사무실에서 분당까지 140으로 밟으면 1시간 20분이면 갈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래야하지?
그녀에게 친구등록하는 법은 가르쳐줬지만, 다시 채팅 상에서 만날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다.
다음날 언제나와 같이 나는 내 원룸에서 일어나 지사장도 출근한지 10분은 지난 시간인 8시 58분에 정확히 사무실에 출근했고, 언제나처럼 일했다.
그리고 저녁 때가 되어 언제나처럼 사무실에 혼자 남게되었고, 그 며칠 그랬듯 습관적으로 채팅사이트로 들어갔다.
그제서야 어제의 그녀가 오늘도 들어올지 약간은 기대감을 가지면서..
그녀는 있었다. 대기실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쪽지로 인사말을 먼저 날리고, 방을 만들고 초대했다.
레드머신 : 오늘도 들어오셨네요? ^^
심연의산호 : 네....
레드머신 : 오늘부터는 말 놓기로 하지 않았나요? ^^;
심연의산호 : ^^
그녀는 내 채팅습관인 ^^부터 배웠다.
그날의 대화도 전날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는 나를 동생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말을 놓게 되었고, 불과 하루만이었지만 그녀의 타자속도가 꽤 빨라졌다는 점이 조금 달라졌을까..
그리고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과는 직장에서 만나 결혼했고 남편이 제대로 연애해본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 그녀가 영어를 꽤 잘한다는 것, 요즘 그녀에게 편두통을 비롯한 잔병이 많아졌다는 것, 남편이 유능하고 돈도 잘 번다는 것, 하지만 술과 담배를 많이 하고 애들하고 잘 놀아주지 않으며 대화가 적다는 것이 불만이라는 것, 그래서 최근 들어 집에서 혼자 술을 몇잔씩 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 그리고 남편이 원래 체력이 조금 약하고 섹스에 무심하다는 것까지...
하여간 그녀의 최근의 심경에 대해서는 아마 그녀의 남편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그만큼 나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서로의 외로움에 대해서~
그 다음날도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또 그렇게 그 시간에 채팅에서 만났다.
그리고 또 헤어질 시간도 왔다.
레드머신 : 누나, 이제 자야겠네여
심연의산호 : 그래, 동생 피곤하겠다
레드머신 : 뭐 남의 월급받고 사는게 다 그렇져 머 ^^
레드머신 : 그럼 먼저 가세여. 남자가 먼저 뒷모습 보이는거 아니라네여
심연의산호 : 내일 또 볼 수 있지?
레드머신 : 네, 그럼여 ^^
심연의산호 : 그럼 나 갈게, 안녕..
하지만 1분이 지나도 방에서 그녀가 나갔다는 표시는 뜨지 않았다.
레드머신 : 누나, 아직 안갔어여?
심연의산호 : 응..
레드머신 : 왜여, 잠이 안와여? ^^
심연의산호 : 그렇기도 하고..
레드머신 : 쿠쿠, 그럼 좀만 더 대화하져 머 ^^
다시 대화는 이어졌고 시간은 많이 늦어졌다.
레드머신 : 많이 늦었넹, 이제 정말 누나 자야겠네염
레드머신 : 요즘 잠도 깊이 잘 못잔다믄서
심연의산호 : 응, 많이 늦었네
레드머신 : 먼저 가세여 ^^
심연의산호 : 응, 그래 그럼 내일 봐
레드머신 : 네~ ^^
하지만 또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도 그녀는 나가지 못했다.
레드머신 : 우리 누나 또 못가시네 ^^
심연의산호 : 그러네..
레드머신 : 우리 이러고 밤샐까? ^^
심연의산호 : 그럴까?
심연의산호 : 아냐, 동생 내일도 일해야 되잖아.. 자야지
레드머신 : 쿠쿠, 누나를 먼저 재워야 내가 자러 가져
레드머신 : 일케 혼자 남겨놓고 어떻게 내가 자러가남 ^^
아마 이런 식으로 대화가 대여섯번은 이어져갔던 것 같다. 그렇게 여름밤의 새벽은 깊어만 갔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 말 없이 5분은 그대로 있었던 듯 싶은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기고 결국 나갔다.
심연의 산호 : 안녕..
뭔가 마음이 조금 짠해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대학 후배였던 그녀를 유학 떠나보낸 2년 전, 그 이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느낌..
꽤 오랜동안 완전히 잊고 살아왔던 그런 느낌..
물론 그것은 사랑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이 나에게 잊혀졌던 것들을 다시 살아오게 했던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녀는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자리가 이렇게 오래까지 비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게 될거라는 생각을 그때는 조금도 하지 못했다.
아마 그녀도 그러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그렇게 그녀를 만났다.
우리의 대화주제는 많은 것을 넘나들고 있었고, 채팅문화나 성에 관련된 것도 포함되었다.
레드머신 : 알았져, 그런게 컴섹이라는거에여.
레드머신 : 그러니까 나 두고 그런 방 가서 바람피구 그러믄 안되여, 알았져? ^^
심연의산호 : 알았어. 근데 그게 진짜같을까?
심연의산호 : 동생도 해봤어 그거?
레드머신 : 에이, 나같이 순진한 사람이 그런거
레드머신 : 맨날하지 ㅋㅋㅋ
심연의산호 : 정말?
레드머신 : 농담이에여, 농담. 누나는 곧이 곧대로 다 믿어서 농담도 못하겠네 ^^
심연의산호 : 근데 동생도 남자니까 참기 힘들고 그럴 때 있잖아. 그럼 어떻게해?
레드머신 : 음, 대부분은 혼자 해결해야지 총각이니까 ^^;
그런저런 대화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고, 시간은 언제나처럼 새벽으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대화는 전날도, 그 전날도 있었던 일이었다.
특별할 건 없었다. 뭔가 특별한게 시작된건 그 잠시 후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