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인도에서 만난 남자 - 12부

야동친구 1,678 2018.04.15 07:11
인도에서 만난 남자 12
"케이?"
은혜가 케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린다.
왠지 안타까운 마음에 문을 열고 나가니 은혜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어둠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 저편에는 붉은 불씨만이 희미하고 보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방에 있기가 곤란한 일이 있어서 담배나 한대 태우고
가트에나 나가 갠지스강의 새벽 풍경이나 감상하려고... 저는 신경쓰지 마십시오."
케이의 예의 쾌활한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들려온다.
이어 계단을 내려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케이. 케이 잠깐만. 케이"
은혜가 낮은 목소리로 케이를 부르며 다급히 쫓아간다.
왠지 따라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그들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케이의 방문을 지나치려는 찰라 문 저편으로 비음이 썩인 도란도란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 ? "
벌써 케이는 숙소 현관에 다다라 있다.
그는 카운터에서 곤히 졸고 있는 종업원을 깨우더니.
"Would you open the door please? If you don"t mind i wanna look around Ganga."
종업원이 졸린눈을 비비면서 현관을 채운 자물쇠를 끌러 준다.
케이가 현관문을 밀고 나가자 은혜가 뒤따라 나간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니 현관문이 케이와 은혜 그리고 나를 격리시키는 듯 굳건히 닫혀있다.
이 상황에서 나는 그들을 따라가야 하나? 나는 삼자가 아닌가?
"Are you going out?"
종업원이 졸린듯 재촉한다.
"Yes, please."
나는 삼자가 아니다. 나를 가로막은 문을 밀고 나간다.
밖은 어둡다. 양 갈래 길에서 어디로 갈지 망설이고 있는데 어둠 저쪽에서 케이를 부르는 은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 길을 내려간다. 한참을 가자 불빛이 언뜻언뜻 보이고
이층 건물 높이로 가득 쌓아놓은 장작 더미가 보인다. 장작더미 뒷편으로 은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케이 내 말좀..."
"네 말씀하세요."
"케이 제발."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저는 좀 바빠서 실례하겠습니다."
장작더미 뒤를 돌아가니 어둠속에서도 불빛에 비친 잔잔한 갠지스강의 물결 느껴진다.
가트 윗부분에서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은혜와 삼각대를 받쳐놓고 카메라를 조절하고 이는 케이가
보인다. 케이의 귀에는 대화를 거부하는 의미의 이어폰이 꽃혀있다.
쿨한 케이답지 않은 모습이다.
은혜가 울듯이 케이를 부르며 서있다.
카메라로 이리저리 각도를 조절하던 케이가 나를 발견한 듯 손을 흔든다.
어정쩡하게 그들을 향해 걸어간다.
은혜의 시선은 케이에게 못박힌채 나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람람 사떼. 람람 사떼해. 람람 사떼. 람람 사떼해. 람람 ... "
또 시체를 메고가는 소리가 들린다.
"신은 진리다. 뭐 대출 그런 뜻이래요. 정확한지는 자신이 없네요. 알려준 사람과 커뮤니케이션 장애가
조금 있어서. 아! MP3 건전지가 다 되서. 폼잡을려고 한건 아닌데. "
이어폰을 빼더니 싱긋 웃는다.
케이는 종잡을 수 없다.
"케이. 미안. 그건 술이 취해서.."
"저기 보이는 불빛이 시체를 태우는 화장터에서 나오는 불빛입니다. 저기 조금 기울어진 건물이
몇천년 전에 시바의 부인을 화장했다는 곳인데 그 이후로 비가오나 눈이오나 홍수가 지나
한번도 불이 꺼진 적이 없답니다. 화장터에 인접한 이 곳을 버닝 가트라 부르기도 합니다. 힌두어로는
발음히 좀더 길고 어렵습니다."
"케이 제발 내 말좀."
은혜가 사정하듯이 케이의 이름을 부르고 사정을 설명을 하려는데 케이는 은혜의 반바지 밑으로 드러난
다리사이를 흘낏 보고는 마치 못들었다는 듯이 설명을 이어 나간다.
내 정액이 아직 뭍어있다.
"아시다시피 이 갠지스강은 힌두교 사람들이 믿기로 하늘의 강이 지상에 내려온 성스러운 강이고
또 이곳에서 화장되어 갠지스강에 뿌려지는 것을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뭐 인도가 워낙 크고 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일부 부유층만이 이곳에서 화장하는 기회를 얻지만요.
저기 보이는 장작의 가격도 무척이나 비싸서 많은 시신들이 완전히 타지 못한채 갠지스강에
뿌려집니다."
"케이 좋아해요. 좋아한다구요. 그 일은 내가 술이 취해서...."
"이쪽 강변으로 늘어선 궁전같은 건물들은 원래 크샤트리아 계층의 거처였지만 현대에 들어와
호텔로 개조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또 강 저편은 온통 모래밭인데 붓다가 인용한 그 유명한..."
케이의 음성은 여전히 쾌활하고 싱글거리듯 들려오고 은혜는 절규한다.
씨발 은혜가 미안하다고 사정하는데 저 개새끼는 들은 척도 안한다.
"야이 개새끼야"
"꺅 !"
순간 이성이 뚝 끊어지면서 케이의 면상을 갈겨 버렸다.
케이는 비틀거리고 그 와중에 카메라가 넘어졌다.
케이의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흐른다.
은혜는 비명을지르고 케이에게 띄어간다.
케이는 은혜의 부축을 물리치고나서 자신의 상처는 돌보지않고 카메라부터 살펴보고 확인한다.
처음으로 케이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신다.
"다행이 본체에는 이상이 없지만 렌즈에 금이 갔습니다. 렌즈가 고가품이어서 변상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주먹을 날릴때는 겨드랑이를 붙이고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서 앞발에 체중을 실어치는것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뭔가 부웅하고 날아온다. 둔탁한 충격과 함께 몸에 힘이 빠진다.
눈을 떴다. 순간 정신을 잃었나 보다.
턱이 얼얼하다
은혜가 무릎베게를 해 준채 나를 걱정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다.
그렇게 애매한 표정 짓지마. 케이가 더 오해할지도 모르는데.
.화장터에서 풍겨오는 구역질나는 단백질 타는 냄새와 은혜의 체향과 은혜의 몸에 뭍어있는 내 정액 님새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괜찮아요?"
"오백 달럽니다."
은혜와 케이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선과 악이 몹시되 대비되는 순간이군. 저 냉혈한 같으니. 자기에게 무지막지하게 맞고 막 일어난사람에게
피해보상 금액부터 알려주다니.
"사진 찍기는 글렀군요."
어느새 케이의 입술의 피는 아직도 멎지 않고 있다. 입술을 손등으로 훔치며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않아
인도풍의 허술한 가방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낸다. 진흙으로 초벌구이된 황토빛의 짜이잔과 보온병이다.
보온병에 든 액체를 짜이잔에 따라 한모금 마시더니 담배를 물어 불을 붙이더니 눈을 감는다.
"나 좋아하지 말아요. 별로 반갑지 않아요."
케이의 입에서 나른하고 염세적인 음성이 새어나온다.
낯설다. 씨발. 너 답게 발정난 개새끼 꼬리 흔드는 것 처럼 실실 거리라고.
"케이... "
은혜가 나의 머리를 치우고는 케이에게 다가가 십루피를 내민다.
"잔돈이 없어요"
케이가 곤란한 듯 거절한다.
"은혜야 내가 그냥 줄께."
"그럼 두개피 주세요."
내가 담배를 꺼내어 주려는 순간 은혜가 굳이 케이에게서 두 개피의 담배를 십루피에 교환한다.
은혜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케이옆에 앉아 케이의 짜이잔을 들어 홀짝인다.
"짜이 맛이 이상해요"
"짜이에 위스키를 섞었습니다. 뭐 성지에서 드러내 놓고 술마시기 그래서 위장 좀 했죠,
저에겐 술맛은 그리 중요하지 않거든요."
둘은 그렇게 앉아 담배를 피며 짜이잔에 담긴 짜이로 가장된 위스키를 홀짝인다.
케이의 높임말이 어색한 가운데 외 떨어진 나만 홀로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케이 어제 아침에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그런 모습 보여서 많이 실망했죠?
저도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스러워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렇지만 나 정말 케이 좋아해요. 좋아해 달란 말은 안할께요. 어제처럼만 대해 줘요, 네?"
은혜가 케이에게 사정한다.
케이가 픽하고 웃는다. 모양은 전번의 그 웃음과 다를 바 없는데 왠지 무척이나 쓸쓸하게 느껴진다.
"정상적인 고백은 아니군요. 다른 남자의 정액을 냄새를 풍기며 고백을 하다니.
하긴 뭐 인도에 정상적인 사람은 없죠.
근데 제게 왜 미안해요? 그리고 제가 뭐 실망할 거나 있나요? "
케이는 여전히 눈을 감고 황홀하게 니코틴을 음미하며 말을 이어간다.
"나는요 실망이라든지 절망이라든지 하는 감정을 느끼기엔 신경이 너무 무디어져 있어요.
분노나 질투도 더이상 나에게 자극이 되지 못해요.
연인의 외도나 바람 그리고 배신도 더이상 나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아요.
이미 내 심장은 저기 화장터의 시체처럼 죽어 있거든요. 오래 전 부터. 난 더이상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어요."
케이는 고백하듯이 낮게 속삭인다.
그의 음성에는 진한 슬픔이 배어 나온다.
아직 젊은놈이 세상 다 산 노인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 같다.
"달아요."
은혜가 갑자기 케이에게 키스를 하더니 입을 떼고 말한다.
"케이 당신의 피가 참 달고 뜨거워요."
그렇게 말하는 은혜의 입술엔 케이의 피가 묻어져 나온다.
케이는 말없이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고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먼동이 터오고 갠지스 강의 밤새 감춰둔 부끄러운 알몸이 드러난다.
"날 좋아하지 말아요. 난 은혜씨가 두려워요."
케이는 그말을 남기고 은혜를 버려둔채 발걸음을 옯긴다 날 보고선 싱긋 웃더니 묻는다.
"부인께 전화는 자주 하나요?"
그 말과 함께 잠시간 있고 있던 우리 이쁜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더불어 죄책감 또한 물밀듯이 밀려온다.
씨발 케이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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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는 좀 짧은 느낌이 듭니다.
머릿속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 쉽지않은 일이란걸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연휴 잘 보내시고 계시죠?